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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의 여유>

  • 구순옥
  • 등록 2020.12.06 22:40:10
  • 조회수 132

천재문인 고운(孤雲) 최치원

천백 년 전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유학길에 오른 이유는 당시 신라에는 엄격한 신분 골품제도(骨品制度)가 있었다. 높은 신분이 아닌 최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조기유학을 보내야만 했다.

그 시대에는 15세이면 관례를 행하는 나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치원만 유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골품제도(骨品制度)의 혈통을 가진 신분들은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 갔었다. 당나라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두지도 않고 우수한 자에게는 관직도 내줬다. 나라가 부응하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강국으로 성공한 이유도 바로 각국의 인제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10년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거라, 나도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오하게 말했다. 나 같으면 초등학생 아들을 이국땅으로 보낼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최치원의 아버지는 달랐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크게는 나라를 위해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의 가난한 유학생활은 부모님이 얼마나 그립고 삶이 고달팠을까. 최치원의 유학생활은 졸음을 쫓기 위해서 상투를 매달았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천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가 되었다.

최치원은 유학생활 6년 만에 장원급제 한다. 당나라에서는 최치원을 바로 관직에 임명했다. 각국에서 온 사신·유학생·예술가들에게 중국최대문명발상지 장안(長安)에서 명성을 날리는 데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최치원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곧 승진시험을 준비한다. 그런데 마침 안타깝게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승진시험이 취소되고 말았다.

당나라 경문왕 때 정치 혼란과 가뭄으로 대 환란 기를 맞이했다. 이때 소금장수 출신 황소라는 사람이 자기가 황제라며 장안(長安)을 점령해 버린다. 이게 황소의 반란이다. 총사령관 고변은 황소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글을 쓰라고 최치원에게 부탁한다. 최치원은 항복을 권하는 격황소서를 황소에게 전했다. 무지한 황소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벌벌 떨었다고 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벌벌 떨었을까! 번역된 격황소서는 이렇게 시작 된다. “대범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고변은 황소의 난 진압에 실패하여 관직에서 박탈당하고 장안을 점령하려 했던 황소는 오히려 최치원을 뛰어난 문장가로 만들었다. 최치원은 순식간에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치원은 남녀 간의 정을 구름과 비로 비유한 꿈 이야기 운우지정(雲雨之情) 또한 화제였다. 억울하게 죽은 자매의 혼백과 하룻밤을 나누었던 이 시는 귀신마저도 감동시켰다며 당대 최고의 천재문인으로 인정받았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7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젠 고국으로 돌아가자’라며 정치적 입지를 꿈꾸며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하여 헌강왕 측근이 된다. 당시 신라는 진골귀족가문이 득세했고 왕은 왕권강화에 안간힘이었다. 이듬해 최치원은 당나라에 있을 때 썼던 시·별지·격서·표 등을 수록한 시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을 정강왕에게 바친다.

당시 신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기였다. 귀족들은 민생은 살피지 않고 왕위다툼만 벌이고 향락에 빠져 지냈으며 기근과 자연재해까지 겹쳐 나라는 피폐해져만 갔다. 궁핍해져가는 국가재정은 가난한 농민들의 몫이었다. 농민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바치게 하므로 참다못한 농민 원종과 애노는 반란을 일으킨다.

진성여왕 즉위 때 최치원은 지방관으로 발령받는다. 대혼란에 빠진 신라를 위해 최치원은 시무십조(時務十條) 개혁안을 내세운다. 시무10조는 군신 모두가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 중에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부정 출세를 막아야 하고, 어진 선비의 진출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이 시무7조 상소문을 올려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성여왕은 시무10조 뜻을 수용했고 최치원은 최고 관직에 오른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발로 시무10조는 시행되지 못했다. 이어 후삼국시대로 들어가고 진성여왕은 왕위에서 물러나 해인사로 떠난다. 훗날 최치원도 그를 따랐다. 세기의 문인은 해인사에서도 여전히 나라를 위해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뜻이 아니면 가지 않았던 최치원은 세종대왕 같은 성군을 만났어야 했다. 최고의 관직까리 올라 무너져가는 신라를 일으키려고 끝까지 노력했던 인물이다. 시대를 잘못만나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옥같은 시문을 남겼으며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현대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신하를 알아보기는 어진 임금밖에 없다’고 최치원은 말했다. 그는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해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지만 다행이도 훌륭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자랑스러운 인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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