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의 여유> 이천 년 전의 문명의 도시 이탈리아와 로마 수필가 구순옥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그리하여 나도 지난날의 추억이 그립고, 또 떠나고 싶은 마음에 몇 년 전 서유럽 여행을 회상해 보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천 년 전 건설된 로마는 견고했고 최첨단 기술의 상하수도 시설까지 완벽했다. 현시대와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 당시 인구 10만 명을 수용한 큰 도시였고 도로 정비가 잘 된 계획적인 도시였다. 그러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다. 물의 도시, 상업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유람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가로지른다. 드디어 환상의 도시 베네치아가 그림같이 펼쳐졌다. 바다 한복판에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했고 인간의 한계는 신에 가까웠다. 유람선에서 내리니 눈도장 찍을 명소들이 많았다. 두칼레궁전, 산마르크 광장과 성당 등 발바닥이 땀나도록 귀한 보물들을 찾아다녔다. 해상 관람하는 교통수단은 가옥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곤돌라와 대운하를 쾌속으로 달리는 수상택시가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오래된 가옥들을 지나
친정 엄마 같은 올케 언니 작은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친정엄마 같은 올케언니를 떠올렸다. 아픈 몸으로 지은 농산물을 아낌없이 퍼주는 언니다. 나는 그런 언니의 고마움을 보답은커녕 가슴속에 묻어두고만 살아왔다. 이제야 깊숙이 들어앉은 진심을 꺼내 보련다. 새언니가 시집 왔을 때 나는 15살이었다. 언니는 엄마 없이 자란 시누이에게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줬고 나는 엄마 품이 그리웠는지 언니를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등교하는 시누이를 매일 같이 새벽밥을 지어 아침밥을 거르지 않게 했고 도시락도 꼬박꼬박 챙겨 주셨다. 보릿고개 시절이었지만 쌀밥으로만 싸 준 기억도 생생하다. 없는 살림에 시집온 언니는 장손 며느리도 아니었는데 홀시아버지 모시고 힘든 대소사를 도맡아 치렀다. 그리고 언니 자식이 4명인데도 3명의 사내 조카를 키우게 되었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감동의 물결이 하늘까지 전해졌는지 조카들은 말썽 없이 잘 자라 주었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살고 있다. 지금도 큰 엄마 집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조카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나 역시 언니에 대한 고마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결혼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