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의 여유>
천백 년 전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유학길에 오른 이유는 당시 신라에는 엄격한 신분 골품제도(骨品制度)가 있었다. 높은 신분이 아닌 최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조기유학을 보내야만 했다. 그 시대에는 15세이면 관례를 행하는 나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치원만 유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골품제도(骨品制度)의 혈통을 가진 신분들은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 갔었다. 당나라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두지도 않고 우수한 자에게는 관직도 내줬다. 나라가 부응하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강국으로 성공한 이유도 바로 각국의 인제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10년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거라, 나도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오하게 말했다. 나 같으면 초등학생 아들을 이국땅으로 보낼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최치원의 아버지는 달랐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크게는 나라를 위해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의 가난한 유학생활은 부모님이 얼마나 그립고 삶이 고달팠을까. 최치원의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