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혜원 신윤복의 고향, 서울 은평구!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은 조선 500년을 통해 가장 에로티시즘의 천재적 작가입니다. 고령신씨 안협공파 후손으로 『1804년 고령신씨 한성보』에 의하면 은평구 구산동에 고령신씨 안협공파 조상의 묘소 26기 54위가 모셔져 있고 신윤복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등 조상대대로 내외분의 묘소가 합장 혹은 단독장의 형태로 있었습니다. 1804년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과 신윤복이 생존해 있어 족보에 기록은 없지만, 신한평과 신윤복의 사망 이후 이들 역시 은평구 구산동 거북골근린공원(지금의 구산중학교 자리)에 묘소를 마련하였으므로 489년 전부터 신윤복의 8대 선조님과 후손들의 세거지요 세장지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은 일재(逸齋) 신한평(申漢枰)과 어머니 홍천 피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신한평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만 그릴 수 있는 1773년(영조 49) 영조 어진과 왕세손 정조의 어진을 그린 후 포상으로 '신지도 만호(萬戶)'에 제수*되었습니다. 집안 대대로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잘 쓰는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혜원 신윤복은 20세 (1777년 5월 10일) 도화서 화원에 입격하여 첨절제사(僉節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