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좋은뉴스= 기자] 영광군은 11월 7일 개최한 ‘영광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 시굴조사 자문회의’에서, 『호구총수』(1789년)에 기록된 봉수군(烽燧軍)의 거주지로 전해지는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봉수동) 터’를 전국 최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영광군이 2024년 추진한 학술지표조사에서 문헌기록과 실제 살았던 분들의 고증을 통해 확인된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고도도 봉수 남쪽 약 30분 거리의 산의 경사진 곳 말단부를 중심으로 총 3개의 구덩이를 구획해 진행한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로 판단되는 석렬(石列)과, 8~9단에 이르는 계단식 석축, 현재까지도 물이 솟는 우물 터를 확인하여 해당 지역이 실제 사람이 거주할 수 있었던 환경이었음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됐다.
특히, 조사지점이 고도도 봉수로 이어지는 봉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고,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이 일대가 ‘봉수동(烽燧洞)’이라 불렸다는 점에서 봉수를 관리하던 봉수군의 거주지(봉수군마을)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단의 판단이다.
영광 고도도 봉수는 조선시대 제5로 직봉노선 중 여수 돌산도 봉수에서 시작해 양천 개화산(현 서울 남산) 봉수에 이르는 23번째 연변봉수로 서남해안 방어망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통신·국방유적이며, 봉수군은 봉수대에서 횃불(炬火)을 들고 신호를 전달하거나 후망(候望)을 맡은 군사로, 한 봉수마다 약 100명 규모로 구성되어 5명이 5일씩 윤번으로 수직(守職)하는 체계로 운영됐다.
이번에 확인된 봉수군마을 유적은 조선시대 봉수군의 실질적인 생활공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최초 사례로 봉수 운영체계와 봉수군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영광군 관계자는 “향후 봉수군 마을과 봉수로에 대해 연차적인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사적(제5로 직봉-영광 고도도 봉수 유적) 지정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뉴스출처 : 전라남도영광군]















